McDonald’s
일상 정보 2019. 2. 3. 11:22
McDonald’s
레이 크록이 1954년 딕 맥도날드와 마크 맥도날드 형제의 레스토랑 프렌차이즈 체인 사업권을 사들여 설립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음료 등을 판매함
1. 맥도날드의 정의 및 기원
맥도날드(McDonald’s)는 미국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체인으로, 딕 맥도날드(Dick McDonald, 리차드 제임스 맥도날드Richard James McDonald)와 마크 맥도날드(Mac McDonald, 모리스 제임스 맥도날드Maurice James McDonald) 형제가 1948년 캘리포니아의 샌버너디노(San Bernardino)에서 시작한 동명의 햄버거 가게에서 유래했다. ‘맥도날드’라는 사명은 설립자 형제의 가족 이름에서 따왔다.
초기의 맥도날드는 빠른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레스토랑이 호황을 맞자 맥도날드 형제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밀크쉐이크를 주문할 수 있는 기계를 주문했다. 이를 위해 매장을 방문했던 밀크쉐이크 기계 영업사원 레이 크록(Ray Kroc)은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렌차이즈 사업을 제안하고 운영권을 따냈다. 레이 크록은 1954년 첫 프렌차이즈 매장을 오픈한 뒤 공격적인 마케팅과 저가 전략, 전 매장에서의 균일한 품질 관리를 통해 맥도날드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맥도날드는 돔 형태의 빵에 패티, 채소 등을 넣은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밀크쉐이크, 탄산음료 등을 대표 메뉴로 오늘날 119개국 3만 5,000개 이상의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2. 맥도날드의 탄생 및 설립자
1909년 2월 16일생인 딕 맥도날드와 1902년 11월 26일생인 마크 맥도날드는 미국 동부 뉴햄프셔 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극장 사업으로 성공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1933년 서부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했다. 그들은 처음 4년 동안 LA 북부 글렌데일(Glendale)에서 극장을 운영하다가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극장보다 극장 앞 핫도그 노점이 더 장사가 잘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형제는 1937년 캘리포니아 아카디아(Arcadia)에 ‘에어드롬(The Airdrome)’이라는 핫도그 판매점을 세웠다.
당시는 대공항의 여파로 저렴하고 간편한 외식을 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레스토랑이 인기였다. 에어드롬 역시 전형적인 드라이브 스루 레스토랑이었다. 에어드롬으로 요식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맥도날드 형제는 1940년 한창 노동인구가 늘어나고 있던 샌버너디노로 가게를 확장 이전했다. 샌버너디노에 새로 설립한 레스토랑의 이름은 ‘맥도날드 바비큐(McDonald’s Barbeque)’였으며, 핫도그, 햄버거, 프렌치 프라이, 쉐이크 등의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이 레스토랑 역시 드라이브 스루 콘셉트로 당시 10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황에 따른 사업 정체기를 맞이하자, 맥도날드 형제는 레스토랑의 운영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했다.
1948년 새로이 문을 연 레스토랑은 기존 맥도날드 바비큐의 메뉴를 가장 인기 있는 9가지로 축소한 것이었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맥도날드’로 줄였다.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장비 대신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나이프, 포크, 컵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공장의 조립생산 방식에 기초한 효율적인 주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서비스는 획기적으로 빨라졌고, 간소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품질 향상에 매진할 수 있었으며, 생산 단가가 낮아져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훗날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패스트푸드, 혹은 퀵서비스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비즈니스의 원형이 되었다. 이를 통해 맥도날드는 큰 인기를 끌었고 프렌차이즈 제의도 줄을 이었다. 이에 맥도날드 형제는 1952년부터 프렌차이즈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확고한 경영 방침 없이 문을 연 지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킨 것은 1954년 밀크쉐이크 기계 영업사원으로 맥도날드를 방문한 레이 크록이었다. 당시 52세였던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본점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아 전국적인 사업을 구상했으며, 형제를 설득해 프렌차이즈 경영권을 따냈다. 1955년 레이 크록은 일리노이주의 디플레인스(Des Plaines)에 첫 번째 정식 맥도날드 프렌차이즈 매장을 오픈했고 패스트푸드 프렌차이즈 브랜드로서 맥도날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 맥도날드의 역사
1) 설립 ~ 첫 해외 매장 설립(1955~1967)
레이 크록은 1955년 첫 번째 정식 프렌차이즈 매장을 오픈하면서, 기존에 맥도날드 형제가 무분별하게 개설한 분점들을 정리하고, ‘QSC&V(Quality, Service, Cleanliness & Value)’를 기업 모토로 모든 체인에서 균일한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직영점 위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1958년 미국 내에서 1억 번째 햄버거를 판매했고, 1959년에는 위스콘신주 퐁뒤라크(Fond du Lac)에 100번째 매장을 열었다. 1961년에는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사업의 모든 권리를 인수했다. 당시 맥도날드 형제는 매출의 0.5%에 달하는 로열티와 상표권을 포기하는 대신 현금 270만 달러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거액의 거래였으나 오늘날 맥도날드의 연매출을 감안하면 0.5%가 한 해 1억 달러 이상의 액수에 해당하므로 이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행위에 비유되고 있다.
1961년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의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 후 맥도날드는 자사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아이콘과 프로모션 기법들을 도입하며 개성 있는 기업으로 성장해갔다. ‘골든 아치(The Golden Arches)’라 불리는 M자 형태의 로고가 탄생한 것은 1962년이었다. 이 로고는 프렌차이즈 지점들의 주방 설계자로 활약했던 기술자 짐 쉰들러(Jim Schindler)가 개발했다. 그는 기존 맥도날드 레스토랑 옆에 서 있던 하나의 아치를 두 개로 만들어 연결하고 황금색을 칠해 식욕을 자극했다. 이것은 맥도날드의 이니셜인 ‘M’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맥도날드는 이를 공식 로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맥도날드는 전국 각지의 점주들을 교육하기 위한 ‘햄버거 대학’을 설립하고, 어릿광대 캐릭터인 ‘로널드 맥도날드(Ronald McDonald)’를 마스코트로 채택해 어린이 고객들을 공략했다. 1966년에는 최초의 TV 광고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노력들에 힘입어 맥도날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식품 기업으로 성장해갔으며, 1967년부터는 전 세계로 시장을 넓히기 시작하여 최초의 맥도날드 해외 지점이 캐나다와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졌다.
2) 빅맥 출시 ~ 패스트푸드의 위기(1968~2002)
1967년, 맥도날드뿐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기도 한 ‘빅맥(Big Mac)’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빅맥은 펜실베니아 유니언타운(Uniontown)의 맥도날드 지점 소유주였던 짐 델리게티(Jim Delligatti)가 개발한 것이었다. 빅맥은 곧 공식 메뉴로 인정받아 1968년부터 전체 매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3개의 빵 사이에 쇠고기 패티 2개와 양상추, 양파, 피클 등이 끼워져 있는 이 커다란 햄버거는 출시 1년 만에 50억 개가 팔리며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의 슈퍼 사이즈 문화를 주도했다. 맥도날드가 전 세계 119개국에 진출해 있는 대규모 레스토랑 체인이고, 현지 물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며, 그 대표적인 메뉴가 빅맥이기 때문에 빅맥의 가격 비교를 통해 각국 통화의 실질적인 가치를 측정하는 빅맥지수가 개발되기도 했다.
1974년 맥도날드는 자선병원인 ‘로널드 맥도날드 하우스(Ronald McDonald House)’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다. 이 병원은 딸의 백혈병 간호를 위해 병원 의자와 벤치에서 생활해야 했던 당시 필라델피아 이글스(Philadelphia Eagles) 미식축구 선수 프레드 힐(Fred Hill)과 감독 짐 머레이(Jim Murray)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이후 1984년 공식적으로 출범한 ‘로널드 맥도날드 하우스 재단(RMHC, 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을 통해 현재까지 전 세계 중증 어린이 환자와 가족들을 후원하고 있다.
1979년 맥도날드는 어린이를 위한 메뉴인 ‘해피밀(Happy Meal)’을 출시했다. 1977년 맥도날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광고 담당자였던 딕 브람스(Dick Brams)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모션으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면 장난감을 끼워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1979년부터는 이것이 ‘해피밀’이라는 고정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최초의 해피밀 패키지는 서커스 마차 모양이었다. 1980년부터는 호주, 홍콩, 남미와 뉴질랜드 등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해피밀이 판매되었고, 1995년 이후로는 유럽 전 지역에서 출시되었다. 해피밀에 포함되는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캐릭터 장난감은 때로 웃돈이 붙어 거래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한국에서 2014년 출시된 슈퍼마리오 세트는 어린이뿐 아니라 1980~90년대 대중문화에 열광했던 30~40대 성인들에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1984년 1월 14일 창업자인 레이 크록이 사망했다. 그는 1977년 이미 맥도날드 1호점 첫 종업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프레드 터너(Fred L. Turner)에게 회장 겸 CEO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맥도날드를 위해 일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직함은 ‘마케팅 양심(Marketing Conscience)’이었다. 매주 맥도날드 체인점 2~3군데를 방문해 햄버거의 품질, 청결도, 친절성 등을 체크하고 고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주 임무였다.
1983년 미국 월간지 '에스콰이어(Esquire)'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했고, 제퍼슨(Thomas Jefferson,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을 건국했고, 레이 크록은 미국을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했다”는 평가를 실었고, 1990년 '포츈(Fortune)' 잡지는 레이 크록을 ‘20세기 가장 중요한 100명의 미국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1990년 1월 31일, 맥도날드는 모스크바에 첫 지점을 열었다. 푸시킨 광장(Pushkin Square)에 자리한 모스크바 1호점은 첫 날 하루 동안 3만 명 이상의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980년대 맥도날드는 코카콜라(Coca Cola), 리바이스(Levi’s) 등과 더불어 세계를 평정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맥도날드의 모스크바 진출은 당시 공산권 국가들에 불던 개혁, 개방의 기류를 증명하는 사례로 각인되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맥도날드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웰빙’ 열풍이 불면서 위기를 맞았다.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각종 매체들은 햄버거의 유해성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고,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날드는 직격탄을 맞았다. 실적은 악화되어 갔고, 2002년에는 최저 주식 가격(14.66달러)을 기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3) 웰빙 트렌드에 따른 변화(2003~2014)
2003년 맥도날드는 하향세를 극복할 대대적인 ‘재활성화 계획’을 수립했다. 확장식 성장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신규 점포 투자 규모의 감축, 운영 효율성 증대, 성장 목표의 하향조정 및 주주 중심의 경영 방침을 내세웠다. 특히 식품안전과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해 적극적으로 웰빙 전략을 펼쳤다. 맥도날드는 어린이와 가족들이 주요 고객인 해피밀을 시작으로 각종 메뉴에 대한 영양 성분 공개를 시도했다. 프리미엄 샐러드와 스낵 랩 등 다양한 메뉴를 추가했고, 2008년에는 미국 내 전 매장의 치킨 제품, 해시 브라운, 프렌치 프라이 등에 트랜스 지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맥도날드는 2009년부터 전 세계에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인 ‘맥카페(McCafé)’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햄버거 대신 커피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주로 매장 안의 매장(Store-Within-A-Store) 형태로 맥도날드 체인 안에 입점한 맥카페는 커피 전문점 수준의 다양한 음료 메뉴를 커피 전문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맥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각종 에스프레소 음료, 스무디, 쉐이크 등을 판매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맥카페를 도입한 호주에서는 맥카페 매출이 전체 맥도날드 매출의 30%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2014년까지 약 1,600개의 맥카페가 들어섰으며 이는 맥도날드의 또 다른 수익창출의 동력이 되고 있다.
4. 맥도날드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스피디 시스템(Speedee System)
맥도날드 형제가 1948년 레스토랑을 재오픈하면서 도입한 주방 시스템인 스피디 시스템은 패티를 굽고, 드레싱을 바르고, 재료를 조립해 포장하는 등 식품 제작의 각 공정을 세분화해서 분업하는 공장식 작업 방식이었다. 즉, 햄버거를 굽는 사람, 햄버거에 드레싱을 바르는 사람, 주문을 받는 사람,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사람, 감자튀김을 튀기는 사람 등 분업을 하는 방식을 통해 조리 속도를 높였던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주방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다. 맥도날드는 스피디 시스템을 통해 조리 속도를 높이고 가격을 낮추었으며 메뉴의 가짓수도 1/3로 줄였다. 나이프와 숟가락, 포크도 없애고 종이접시와 종이컵, 종이 봉지를 도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리 속도를 최대한 짧게 했다.
2) 생선 살 샌드위치, 필레 오 피시(Filet-O-Fish)
1962년 미국 신시네티(Cincinnati) 지역의 가맹점주인 루 그로언(Lou Groen)은 금요일이면 육류를 먹지 않는 독실한 로만 가톨릭(Roman Catholic) 신자들을 위해 생선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고안했다. 당시 신시네티 주민의 87%는 로만 가톨릭이었으며, 이로 인해 루 그로언이 소유한 지점의 금요일 매상은 75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금요일이면 맥도날드의 경쟁업체인 빅보이(Big Boy)에 가서 생선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에 루 그로언은 대구와 송어 살을 갈아서 넣고 치즈를 더한 햄버거 모양의 샌드위치를 고안해냈다. 레이 크록은 이것을 전국 맥도날드 체인에 추가했다. 필레 오 피시는 1948년부터 이어져 온 맥도날드의 오리지널 메뉴에 최초로 더해진 새로운 품목이었다.
3) 빵 세 개를 사용한 햄버거
1968년 맥도날드는 기존의 위, 아래 햄버거 빵 외에 가운데를 지탱하는 한 장의 빵을 더 사용한 빅맥을 출시했다. 빵 세 개를 사용한 햄버거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빅맥이 맥도날드의 상징적인 아이템이 되자 업계의 다른 회사들도 그 독창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빵 세 개짜리 햄버거는 오랫동안 만들지 못했다. 이 불문율을 깨뜨린 것은 경쟁사인 버거킹(Burger King)으로, 그들은 1997년 일부 매장에서 한정판 형식으로 ‘빅킹(Big King)’이라는 빵 세 개짜리 햄버거를 판매했다. 2013년 버거킹이 빅킹을 정식 메뉴로 출시하자 USA 투데이(USA Today)와 월스트리트저널(Wallstreet Journal) 등은 버거킹이 맥도날드를 모방했다는 취지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4) 잉글리시 머핀(English Muffin) 스타일 계란 요리, 에그 맥머핀(Egg McMuffin)
1970년대 미국의 일부 매장에서는 개장시간을 앞당겨 출근길 비즈니스맨들을 공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문제는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기에 적절한 부담 없는 메뉴의 개발이었다. 에그 베네딕트에서 영감을 받은 ‘에그 맥머핀(Egg McMuffin)’은 이런 요구 아래 탄생했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지점의 소유주 허브 피터슨(Herb Peterson)이 고안한 에그 맥머핀은 두툼한 패티 대신 잉글리시 머핀 모양으로 익힌 따뜻한 계란을 끼워서 넣은 것이었다. 맥도날드 고유의 둥그런 햄버거 빵도 잉글리시 머핀으로 대체되었다.
5) 뼈 없는 치킨 요리, 치킨 맥너겟(Chicken McNugget)
1979년 맥도날드는 업계 최초로 뼈 없는 치킨 요리인 ‘치킨 맥너겟’을 선보였다. 이는 당시 회장 프레드 터너가 가금류 공급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개발한 것으로, 핑거 푸드(Finger Food) 스타일의 작고 부드러운 닭 요리다. 치킨 맥너겟은 현재까지도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로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
5.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
맥도날드는 빅맥을 비롯해 육류와 어류를 이용한 다양한 버거 메뉴를 갖고 있으며, 한국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처럼 지역화된 메뉴들을 별도로 출시하기도 했다. 프렌치 프라이와 해쉬 브라운 등의 사이드 메뉴, 콜라와 쉐이크 등 음료를 혼합해 세트를 구성할 수도 있으며, 시간대에 따라 맥모닝, 맥런치 등 특별 메뉴와 할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1) 버거와 샌드위치(Burgers & Sandwiches)
창립 초기부터 맥도날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메인 메뉴는 버거였다. 특히 1968년 소개된 ‘빅맥’은 지금까지도 햄버거의 대명사로 불리며 전 세계 대부분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빅맥은 맥도날드 특유의 돔 형태의 빵 아래 두 장의 순쇠고기 패티와 치즈, 양상추, 양파, 피클 등을 넣은 햄버거이다. 패티 사이에 ‘클럽(Club)’이라고 부르는 빵을 한 장 넣어 형태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1973년 출시된 ‘쿼터 파운더(Quarter Pounder)’ 버거 라인도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쿼터 파운더라는 이름은 안에 삽입되는 비프 패티의 크기가 기존 햄버거보다 1/4파운드(113그램) 커진 데서 유래했다. 그 밖에도 매콤한 양념을 가미한 ‘맥스파이시(McSpicy)’, 빵 대신 토르티아(Tortilla)에 고기, 치즈, 채소 등을 싸먹는 ‘스낵랩(Snack Wrap)’ 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다.
2) 맥모닝(McMorning)
1970년대 맥도날드는 개장 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기고 고객들이 출근 전 간단히 들러서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비스를 맥모닝(McMorning)이라 하며, 맥모닝의 메뉴에는 에그 맥머핀을 비롯하여 핫케익, 해쉬 브라운, 스크램블 에그 등 서양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에서 유래한 여러 가지 제품들이 포함된다.
3) 해피밀(Happy Meal)
해피밀은 1970년대 맥도날드가 어린이 고객들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세트 메뉴였다. 고객들은 어린이용으로 적당한 작은 햄버거, 사이드 메뉴, 음료 하나씩을 골라 세트를 구성할 수 있다. 해피밀은 ‘레드 박스’라 불리는 손잡이가 달린 패키지에 포장이 되며, 해피밀만을 위한 한정판 장난감이 함께 제공된다.
4) 스낵과 사이드, 음료
옅은 노란색의 가느다란 스틱형 프렌치 프라이는 1949년부터 맥도날드를 대표해온 사이드 메뉴다. 감자를 통째로 자르고 카놀라 기름에 튀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밖에도 맥도날드는 프레시 샐러드와 요거트 파르페, 닭날개를 튀긴 맥윙(McWings), 닭가슴살을 다지고 양념해서 튀긴 맥너겟, 쉐이크와 스무디, 콜라 등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판매한다. 2009년부터는 호주에서 시작된 ‘맥카페’를 전 세계로 확대해 에스프레소 커피류를 취급하고 있다.
6. 맥도날드의 광고 및 캠페인
1) 초기 광고 전략
1950년대 맥도날드의 마케팅은 지역 신문 광고에 집중되었다. 당시 마스코트는 조리복을 입고 윙크하는 남자 요리사 ‘스피디(Speedee)’였다. 맥도날드의 빠른 서비스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다른 심볼은 하얀색과 빨간색 타일로 장식된 레스토랑 외관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개의 골든 아치였다. 이 때문에 1961년에는 ‘골든 아치를 보라(Look For The Golden Arches)’라는 테마의 지면 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속도와 함께 초기 맥도날드에서 강조한 것은 가격이었다. 1950년대 지면 광고 중에는 햄버거를 든 소년이 ‘정말 맛있는데... 15센트 밖에 안 해요(Real Good... And Still Only 15c)’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었다.
2) TV 광고와 CM송
1960년대부터 TV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광고 미디어로 자리를 잡았다. 맥도날드는 1966년 최초의 TV 광고를 실시했다. 스피디를 제치고 새로운 마스코트로 선정된 로널드 맥도날드가 커다란 햄버거 조형물 옆에 걸터앉아 익살을 부리는 콘셉트였다. 로널드 맥도날드는 같은 해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통해 다시 한 번 방송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맥도날드의 TV 광고는 친근하고 가족적인 공간, 단지 음식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1974년, 맥도날드는 그동안 반복해 왔던 이미지 광고 대신 제품에 포커스를 맞춘 새로운 콘셉트의 광고를 발표했다. 일명 ‘빅맥 송’이라고 알려진 노래가 이때 탄생했다. 최초의 캠페인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나와서 “참깨 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Two All-Beef Patties, Special Sauce, Lettuce, Cheese, Pickles, Onions On A Sesame Seed Bun)”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크게 유행하자 후속 광고들에서는 실제 소비자들이 이를 따라 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2007년 빅맥 탄생 4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맥도날드도 당시의 광고를 패러디한 TV와 라디오 광고를 제작했다.
1980~90년대에도 친근함과 여유,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는 계속되었다. ’맥도날드를 맛 보기 좋은 시간(It’s A Good Time For The Great Taste Of Mcdonald’S)’, ‘아무도 맥도날드처럼은 못 해요(Nobody Can Do It Like Mcdonald’s)’, ‘음식, 친지들 그리고 재미(Food, Folks And Fun)’, ‘오늘 쉬었니?(Have You Had Your Break Today?)’ 등과 같은 슬로건이 사용되었다.
3) 광고 전략의 변화
2000년대 들어 맥도날드는 가족, 친지, 재미 등을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는 생각과 후발주자들의 도전, 값싸고 오래 된 식품 회사라는 인식에 의해 맥도날드의 매출과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의식 아래 2003년 ‘재활성화 전략’이 수립되었고, 광고 캠페인 역시 세련되고 활동적이며 현대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독일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그룹 헤예 & 파트너(Heye & Partner)는 ‘아임 러빙 잇’(I’m Lovin’ It)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제안했다. ‘나는 이것이 너무 좋다’라는 뜻의 이 슬로건은, 일반적으로 지속적인 슬로건을 지닌 다른 다국적 기업 –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 – 처럼 맥도널드 역시 세계적인 이미지 작업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일관된 슬로건과 함께 맥도널드는 그동안 갖고 있었던 값싼 패스트 푸드 음식의 이미지도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독일 뮌헨에서 2002년 9월부터 시작되었고, 곧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영어권 캠페인에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를 모델로 기용해 슬로건이 포함된 로고송을 부르게 했다. ‘아임 러빙 잇’이라는 슬로건은 현재 맥도날드의 패키지 디자인에도 활용되고 있다.
4) 맥도날드와 비교광고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 업계의 강자인 만큼 경쟁 업체들의 비교광고에 자주 시달렸다. 2002년 패스트푸드 체인 ‘잭인더박스(Jack In The Box)’는 로널드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사의 버거를 맛있게 시식하는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다. 2014년에는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업계 5위권인 ‘타코벨(Taco Bell)’이 이와 유사한 시도를 했다. 전국의 로널드 맥도날드 25명이 모여 타코벨의 아침 메뉴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비교광고를 지양해 온 맥도날드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응수했다. 타코벨의 상징인 치와와를 어루만지는 로널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사진의 캡션은 ‘아첨의 지순한 형태가 바로 모방(Imitation Is The Sincerest Form Of Flattery)’이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맥도날드의 오랜 라이벌인 버거킹은 2008년 햄버거를 먹어본 적 없는 세계 소수민족이나 오지인들에게 자사의 대표 메뉴인 와퍼(Whopper)와 빅맥을 시식시키고 평가를 듣는 ‘와퍼 버진(Virgin)’이라는 테마의 비교광고를 진행했다. 순수하게 맛으로 따지면 와퍼가 빅맥보다 우위라는 의미였다. 이에 맥도날드는 와퍼보다 쇠고기가 20% 더 들어간 MBX를 출시하고, 버거킹의 와퍼보다 MBX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광고로 내보내기도 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비교광고에서 주로 선제 공격 대상이 되었던 맥도날드도 그들이 후발주자로 뛰어든 스페셜티 커피 분야에서는 공격을 가하는 입장이 되었다. 2009년 그들은 새로운 맥카페 에스프레소를 알리는 거리 광고판에서 스타벅스(Starbucks)를 중의적으로 비꼬는 ‘4달러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은 바보 짓(Four Bucks Is Dumb)’이라는 문구로 스타벅스를 도발했다.
7. 맥도날드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맥도날드 그룹(Mcdonald’s Corporation)
딕 맥도날드와 마크 맥도날드 형제가 설립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맥도날드는 1954년 레이 크록이 프렌차이즈 사업권을 따낸 뒤 고속성장을 거듭해 세계적인 레스토랑 체인으로 발전했다. 레이 크록은 1961년 맥도날드 형제에게 270만 달러를 지불하고 회사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으며, 1965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첫 번째 주식을 발행했다.
초창기 맥도날드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직접 건물을 매입하여 프렌차이즈 라이센스와 건물 임차권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개별 투자자들의 초기 투자 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빠르게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이를 통해 라이센스료와 건물 임대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고, 지역 상권 발달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상승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매장의 80%가 대리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맥도날드는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강력한 지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역내 체인점을 감독해 본사의 품질 매뉴얼을 철저히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어느 식당에서도 균일한 품질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창업자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의 기업 정신을 ‘QSC&V(Quality, Service, Cleanliness and Value)’ 즉 ‘품질, 서비스, 청결, 가치’라고 천명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맥도날드의 핵심 가치로 남아 있다.
2000년대 들어 웰빙 트렌드와 패스트푸드 업계의 포화 현상으로 성장률이 둔화되었으나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한 영양 및 재료 공개, 메뉴 다양화, 대체 성장 동력인 커피 산업 진출, 서비스 플랫폼 다각화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맥도날드의 본사인 맥도날드 플라자(McDonald’s Plaza)는 일리노이 주 오크 브룩(Oak Brook)에 위치해 있다.
2)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맥도날드의 연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맥도날드는 전 세계 119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지점 수는 3만 5,000개, 종업원 수는 190만 명에 달한다. 또한 하루 평균 7천만 명의 소비자가 맥도날드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3) 브랜드 가치
맥도날드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100)’에 2000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랭크되고 있다. 2012년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2012년 맥도날드의 브랜드 가치를 374억 달러(약 38조 5,594억 원)로 평가했고 이는 세계 7위 수준이었다.
8. 맥도날드 브랜드 특징
1) 최적의 가격으로 뛰어난 품질을 제공하는 맥도날드의 철학
맥도날드는 고객에게 '최적의 가격'으로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맥도날드에 있어 품질이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엄격하게 매뉴얼화된 방법으로 조리하며, 안전이 검증된 식재료 준비 방법을 사용하고,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뛰어난 맛을 지닌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청결'은 맥도날드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맥도날드의 설립자 레이 크록은 청결을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이는 맥도날드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해온 중요한 철학이 되어 왔다. 매장의 주방, 로비부터 화장실,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가장 깨끗하고 상쾌한 공간과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맥도날드의 목표다.
패티 등을 가공하는 협력사에서도 매일 모든 기자재를 분해, 세척하고 작은 나사 하나까지도 깨끗하게 완전 건조시키는 작업을 하며 청결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매장에서는 매 30분마다 점원들이 손을 씻도록 하고 있으며, 시간별로 철저히 위생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물론, 조리 시 장갑 등 위생용품을 식재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맥도날드는 오랜 역사 동안 구축해온 엄격한 관리 시스템과 기준에 따라 전 세계 매장에서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2)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레스토랑으로 출발한 맥도날드는 친절하면서도 '빠른' 것을 서비스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 성장해 왔다. 특히 매장에서 주문이 들어옴과 동시에 해당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메이드 포 유(Made For You)’ 주방 시스템을 통해 빠른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품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는 고품질의 음식, 친절한 직원의 응대, 깨끗한 환경과 함께 맥도날드가 중요시 여기는 고객의 총체적인 경험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3)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맥도날드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는 체험과 광고를 오락거리로 제공한다. 미국의 교육역사학자 조 킨첼로(Joe L. Kincheloe)는 이를 ‘문화 교육’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 맥도날드만의 문화는 ‘모더니티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어릴 때부터 그들의 맛과 서비스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맥도날드와 미국 문화를 동일시하며 자연스럽게 미국식 세계화를 배우고 그에 동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글로벌 기업은 맥도날드 외에도 많이 있지만 맥도날드는 세계인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침투한 글로벌 기업으로 미국 문화와 세계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가장 빈번히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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